
은교
박범신/문학동네
★★★
2012.05.03 읽음
★★★
2012.05.03 읽음
소설원작의 무엇, 만화책원작의 무엇, 이런식의 OSMU는 무조건 그 원작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을 가진 나이기에 이번에도 '영화 은교'를 보기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은 '소설 은교'이다.
읽고 싶어진 가장 큰 영향이 된 것은 단연 영화 소개 프로인 '씨네포트'에서 본 은교의 너무나 맑고 깨끗한 이미지가 좋아서였다. 적요도 순수하게 소년의 입장에서 은교를 사랑하는 장면들이 나와 마치 소설 '소나기'의 감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제자인 서지우만 괜히 은교에게 성질부리는 성격파탄자의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소설 속 Q변호사와 적요, 서지우의 입장에서 쓴 글들이 교차되는 구성을 통해 그들의 내면심리를 바라보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틀렸다고 느꼈다. 단순히 은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가 아닌, 원래 단단했던 둘 사이에 은교란 인물이 들어오면서 비틀어진 둘의 관계가 소설의 '주'라는 게 맞는 것 같다. 은교도 인정할 정도로 그 둘 사이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고 엔딩으로 갈 수록 비틀려만 가는 사제관계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소설 속 적요는 계속 서지우에 대해서 문학적으로 부족한 면을 짚어대며 "멍청이"란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삼십대 제자의 이혼을 통한 아픔과 문학적 무능함에 대한 측은함을, 동시에 착한 사람됨됨이에 대한 믿음을 가져왔다. 서지우도 누구보다 스승의 능력에 감탄하며 진심으로 그를 위해 친자식들도 못할 헌신을 하고 있었다.
소녀 은교는 아마 모든 측면에서 스승에게 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젊음'이란 승리를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랑이란 감정보단 스승을 망치는 인물 또는 스승에게 과시하고 싶은 승부욕이 느껴졌으니까. 이렇게 은교를 사이에 둔 갈등과 스승의 소설을 도둑질 하는 등 정말 치졸하다 싶을 정도로 비겁했던 서지우였지만, 마지막 적요가 '당나귀'를 이용하여 자신을 죽이려 하였다는 걸 알게되었을 때 흘린 눈물이 나에겐 이 모든 걸 잊게 해줄 만큼 임펙트있었다. 동화였다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은교를 정리한 뒤 스승께 돌아가 사죄하며 다시 헌신하는 삶을 살았겠지만, 이 소설에선 다른 결말이기에 어쩌면 더 답답하고 먹먹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같다.
그리고 문학을 직업으로 삼은 인물이란 배경에 따라 글 중간중간 인용한 수많은 글들도 갈등과 심리를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조금 이해가 안가고 난해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적요와 지우란 인물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그들의 아픔과 갈등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은교'란 인물에 대해서는 공감이 안갔고 나에게 은교는 '철없는 고딩 여자애'일 뿐이었다. 밝고 건강한 것은 매력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남자 둘만 있는 집에 서슴없이 들어오는 조심성없는 행동부터 맘에 걸렸다. 밥사주고 용돈주며 잘 해주는 지우에게 이게 원조교제가 아니고 뭐냐고 말하는 당돌함하며, 이성을 지키기 위해 힘들어 하는 적요에게 할아부지 키스해도 돼요라고 도발하는 것까지. 눈치가 빠른 편이라는 묘사를 보면 다 알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두 인물의 죽음 뒤에 변호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분들에서 자신이 화제가 되는 걸 싫다하면서 너무도 가볍고 일상적인 생활을 보이는 모습이 아니꼬와 보였다. 이렇게 정이 안가는 여자주인공도 처음이었던 듯. 영화 소개에서 내가 보았던 은교는 소설 속에선 없었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저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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